청소년 보호와 매체 심의 - 행정 심의 폐지하고 자율 심의 도입하자

  • 현황 및 문제점

    최근 대중가요나 게임 그리고 웹툰 등이 청소년유해매체로 결정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가사에 단순히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대중가요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되기도 하는 등 심의기준이 모호하고 청소년에 대한 통제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행정기관인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청소년유해매체를 심의하도록 함에 따라 청소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인권의식 및 사회참여욕구가 커가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간주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보호법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심의에 대해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매체별 특성에 대한 고려’가 사라지고 획일적으로 심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제안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 및 심의기능을 삭제하여 각 매체별로 자율적으로 심의‧유통할 수 있도록 개정한다.

    청소년 보호와 매체 심의

    Ⅰ. 문제제기

    최근 대중가요나 게임 그리고 웹툰 등이 청소년유해매체로 결정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가사에 단순히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대중가요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되기도 하는 등 심의기준이 모호하고 청소년에 대한 통제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중가요 등의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의 문화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청소년보호법을 기반으로 한 청소년유해매체판정제도를 개선 또는 폐지할 필요가 있다.

    Ⅱ. 국제인권기준과 외국입법례

    1. 국제인권규범

    청소년유해매체와 관련된 국제인권규범으로는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7조를 들 수 있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7조 (대중매체, 적합한 정보에 대한 접근)
    당사국은 대중매체가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을 인정하며, 아동이 다양한 국내적 및 국제적 정보원으로부터의 정보와 자료, 특히 아동의 사회적·정신적·도덕적 복지와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와 자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짐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당사국은,
    (a) 대중매체가 아동에게 사회적·문화적으로 유익하고 제29조의 정신에 부합되는 정보와 자료를 보급하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b) 다양한 문화적·국내적 및 국제적 정보원으로부터의 정보와 자료를 제작·교환 및 보급하는 데 있어서의 국제협력을 장려하여야 한다.
    (c) 아동도서의 제작과 보급을 장려하여야 한다.
    (d) 대중매체로 하여금 소수집단에 속하거나 원주민인 아동의 언어상의 곤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e) 제13조와 제18조의 규정을 유념하며 아동 복지에 해로운 정보와 자료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지침의 개발을 장려하여야 한다.

    아동권리협약 제17조는 대중매체의 교육적 역할을 인정하는 한편, 대중 매체에서 주어지는 정보가 아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인종 차별’을 합리화하는 인종주의적인 이론과 사상 등을 다루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대중 매체와 관련된 사적 영역에 개입하여 무엇을 보장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정부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만을 보장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곧 ‘유해’, ‘유익’의 판단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배제한 것이고, 정부는 ‘판단’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자유를 위한 조건 마련과 장려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이 조항의 취지이다.

    한편, 초기 아동기(early childhood)에 있어서 아동의 권리의 실행에 관한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7’은 국가가 어린 아이들의 보호를 위하여 매체의 생산과 유통을 규제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일반논평 7’은 “어린 아이들(young children)은 부적절하거나 공격적인 매체에 접하게 되면 특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매체의 생산과 그 배포를 규제할 것과 아울러 부모와 보호자들에게 이 점에서 그들의 아동양육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고 있어(35문단),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논평의 적용대상은 학교 진학 이전의 아동, 구체적으로는 8세 미만의 아동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4문단) 정부의 규제가 미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제한된 영역에 그침을 아울러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논평이 의미하는 바는 (초등)학교 진학 후의 아동은 자신의 창의성 실현을 위하여 다양한 매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청소년유해매체라는 포괄적 규제방식은 허용될 수 없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 인터넷과 관련해서는 유엔 특별보고관이 작성한 연례보고서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언급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정당하게 제한될 수 있는 유형의 정보를 언급하는 한편,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는 것(유통규제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이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 정보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수용자 측의 정보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청소년보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25. 그 자체로서, 정당하게 제한될 수 있는 유형의 정보에는 아동포르노그라피(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 혐오적 표현(영향 받는 공동체의 권리 보호를 위해), 명예훼손(부당한 공격으로부터 타인의 권리와 평판의 보호를 위해), 집단살해를 저지르도록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선동하는 것(타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그리고 차별, 적대 또는 폭력의 선동을 구성하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혐오의 주창(생명권 등 타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이 포함된다.
    27. (전략)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콘텐츠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정당한 목표를 구성하지만, 부모들이나 학교당국이 여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일정한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은 정부에 의한 차단(blocking) 같은 조치를 덜 필요하게 만들고 나아가 그러한 조치를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 국가가 한정된 주파수를 배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등록이나 허가가 필요했던 방송부문과는 달리, 인
    터넷의 경우에는 무한한 수의 진입점과 필연적으로 무한한 수의 이용자들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들이 정당화될 수 없다.

    2. 외국입법례

    한편 미국은 우리 청소년보호법과 거의 동일한 ‘미성년자청소년유해매체물(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개념을 사용하여 인터넷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을 규제하고자 했던 온라인아동보호법(the Child Online Protection Act, COPA)이 있었다. 이 법률은 1997년 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s Decency Act, CDA)이 연방대법원의 위헌결정을 받자, 인터넷상의 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된 두 번째 법률이다. 특히 이 법 §231(e)(6)는 ‘미성년자청소년유해매체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음란하거나 또는 다음 각호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모든 통신, 사진, 영상, 그래픽 이미지파일, 기사(article), 녹음, 저술(writing), 기타 일체의 표현물(matter)
    (A) 평균인이, 당대의 공동체 기준을 적용할 때, 그 매체물을 전체로서 그리고 미성년자와 관련하여 고려하면, 호색적 취향에 호소(appeal)하거나 영합(pander)하도록 고안되었다고 인정하게 되고;
    (B) 실제의 또는 가상의 성행위나 성적 접촉이나, 실제의 또는 가상의 통상적이거나 변태적인 성행위 또는 성기 또는 사춘기가 지난 여성의 유방에 대한 외설적인(lewd) 노출을 미성년자에 대해 명백히 불쾌한 방법으로 그리거나, 서술하거나, 묘사하고;
    (C)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미성년자에 대한 진지한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또는 과학적 가치가 없는 경우

    온라인아동보호법은 1998년에 제정되었으나, 제정되자마자 연방지방법원에 의해 집행금지명령을 받았다. 연방 제3순회항소법원 역시 이 법률의 “공동체 기준”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하였으나, 2002년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의 판시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였지만, 법률의 집행정지는 유지하였다.

    2003년 3월 파기환송심이었던 연방항소법원이 이번에는 이 법률이 성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재차 위헌결정을 내렸고 이에 대해 재상고가 이루어지자, 2004년 6월 29일 연방대법원은 필터링소프트웨어가 온라인아동보호법보다 더 우수하며, 지방법원이 필터링소프트웨어의 효과성을 고려한 지 5년이 지났고, 또 의회가 특정한 매체물에 대한 미성년자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두 개의 법률을 만들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집행정지명령을 유지한 채 재심리를 위해 제1심을 담당했던 지방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하였다.

    재심리를 맡은 연방지방법원의 Reed 판사가 이 법률이 수정헌법 제1조와 제5조를 침해하여 문면상 위헌(unconstitutional on its face)이라고 판단하면서, 이 법률의 집행을 영구히 정지하는 금지명령을 내렸고(2007.3.22.), 이 판결은 연방 제3항소법원에 의해 확인되었으며(2008.7.22.), 2009년 1월 21일 연방대법원은 재상고된 사건에 대한 심리를 거부하였다. 이로써 온라인아동보호법은 의회를 통과한 지 10여 년 만에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본다면,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은 청소년유해매체물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헌법 위반이라는 연방항소법원의 초창기 입장을 수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개념을 인터넷에 적용할 경우에는 여과 소프트웨어를 통한 차단이 가능한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인터넷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배포를 제한하는 것이 과도한 제한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유포를 범죄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위헌이라는 입장으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하거나(harmful) 저속한(indecent) 매체를 청소년에게 배포하는 것을 형벌로 규제하는 법률을 두고 있지만, 이에 대한 위헌소송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미국 각주의 법률이 가진 특징은 유해매체의 범위가 성적 표현에 국한되어 있으며, 법률에서 그 정의를 비교적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주의 법률에서 채택하고 있는 청소년유해매체의 기준은 온라인아동보호법이 제시한 것과 거의 유사하다.
    이 점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의 판단 기준을 극히 넓게 설정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한국의 청소년보호법 등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규제를 정하고 있는 법률들과 미국법과의 차이점은 특정한 표현물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인지 여부는 법원에 의해 결정되며, 행정기관이 그 해당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는
    다는 점에 있다.

    Ⅲ. 인권상황평가: 실태와 문제점

    1.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제도와 청소년보호법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타율적 심의는 법령의 규정에 따라 당해 매체물의 윤리성·건전성의 심의를 할 수 있는 심의기관이 있는 경우에는 매체별로 구분되어 시행되고 있다(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1항 단서). 매체별 심의기관은 아래 표와 같다.

    구분 영상매체물 전자
    오락
    매체물
    음반
    매체물
    공연
    매체물
    통신
    인터넷
    매체물
    방송
    매체물
    인쇄
    매체물
    광고
    매체물
    기타
    매체 영화
    비디오
    음악영상물,
    음악영상파일
    심의
    기관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
    등급
    위원회
    청소년
    보호
    위원회
    영상물
    등급
    위원회
    방송통신
    위원회/
    방송통신
    심의위원회
    한국
    간행물
    윤리
    위원회
    시·도 청소년
    보호
    위원회

    그러나 매체물에 대한 심의기관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심의하고(법 제7조 제1항 본문), 매체에 대해 해당 심의기관이 심의하지 않을 때에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심의하도록 요청할 수 있으며(동조 제2항), 또한 각 심의기관에 심의를 받지 않고 유통되는 매체에 대해서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직접 심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동조 제3항) 청소년보호법과 그에 기반을 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심의기준을 보면 청소년보호법이 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과 관련된 아래 근거법률 중 공연법(제5조),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시행령 제13조), 방송법(방송통신심의위원회규정 제66조),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8조,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이 청소년보호법에서 정한 심의기준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각 심의기관이 심의기준으로 삼는 근거 법률은 아래 표와 같다.

    구분 영상매체물 전자
    오락
    매체물
    음반
    매체물
    공연
    매체물
    통신
    인터넷
    매체물
    방송
    매체물
    인쇄
    매체물
    광고
    매체물
    기타
    매체 영화
    비디오
    음악영상물,
    음악영상파일
    근거
    법률
    영화및
    비디오물의
    진흥에관한
    법률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법률
    게임
    산업진흥
    에관한
    법률
    청소년
    보호법
    공연법 방통위
    설치법,
    정보통
    신망법
    방송법 출판문화
    산업
    진흥법
    옥외
    광고물

    관리법
    청소년
    보호법

    2. 청소년보호법의 문제점

    그런데 이런 청소년보호법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가. 지나친 봉쇄

    청소년보호법 제1조는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 청소년이 유해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 등을 규제하고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를 두고 청소년보호법은 범죄원인론의 측면에서 1)미시환경론과 2)사회심리학적 접근을 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미시환경론은 개인이 처해있는 주변 환경에 주목하는 이론이고, 사회심리학적 접근이란 사람의 행동을 사회적인 환경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소년보호법은 미시적·사회심리적 접근을 통해 청소년이 잠재적 범죄자가 되는 것을 예방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보호법의 미시적·사회심리적 접근 중에서도 특히 관련성이 큰 것이 바로 봉쇄이론이다. 봉쇄이론은 범죄유발요인과 범죄차단요인을 구별하여 범죄유발요인이 범죄차단요인보다 강하게 작용하면 범죄가 발생한다는 이론으로 범죄요인을 억제함으로써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청소년보호법의 경향 - 청소년에 대해 유해할 수 있는 매체 등을 우선 차단해야 한다는 -
    이 청소년의 미성숙성, 정부의 보호자적 역할 등 전통적으로 청소년과 관련되어 제기되어 왔던 이론들과 결합하게 되면,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청소년에 유해할 수 있는 요인을 광범위하게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반면에 표현의 자유나 재산권 혹은 그 규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한될 청소년의 기본권, 즉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결정권이나 자유권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점점 커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아실현욕구나 표현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할 수 있다.

    나. 심의기준의 추상성

    먼저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심의기준이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청소년보호법에서 정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은 아래와 같다(법 제9조 제1항).

    1.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 행위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것
    5.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沮害)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
    6. 그 밖에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이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은 아래와 같다(시행령 제7조, 별표1).

    1. 일반 심의기준

    가. 매체물에 관한 심의는 당해 매체물의 전체 또는 부분에 관하여 평가하되 부분에 대하여 평가하는 경우에는 전반적 맥락을 함께 고려할 것
    나. 매체물 중 연속물에 대한 심의는 개별 회분을 대상으로 할 것. 다만, 법 제8조제5항의 규정에 해당하는 매체물에 대한 심의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다. 심의위원 중 최소한 2인 이상이 당해 매체물의 전체내용을 파악한 후 심의할 것
    라. 법 제8조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실제로 제작·발행 또는 수입이 되지 아니한 매체물에 대하여 심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구체적·개별적 매체물을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회통념상 매체물의 종류, 제목, 내용 등을 특정할 수 있는 포괄적인 명칭 등을 사용하여 심의할 것

    2. 개별 심의기준

    가.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나. 성행위와 관련하여 그 방법·감정·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
    다.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가학·피학성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
    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것
    마. 존속에 대한 상해·폭행·살인 등 전통적인 가족윤리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
    바. 잔인한 살인·폭행·고문 등의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조장하는 것
    사. 성폭력·자살·자학행위 기타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것
    아. 범죄를 미화하거나 범죄방법을 상세히 묘사하여 범죄를 조장하는 것
    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
    차. 저속한 언어나 대사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
    카. 도박과 사행심조장 등 건전한 생활태도를 저해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것
    타. 청소년유해약물 등의 효능 및 제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 복용·제조 및 사용을 조장하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
    파. 청소년유해업소에의 청소년고용과 청소년출입을 조장하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
    하.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

    청소년보호법에서 심의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것에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란한 것,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반사회, 비윤리적인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음란성은 지금까지 그 추상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개념이다. 물론 대법원은 음란성에 대해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케 하는 물품으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음란성 개념에 대해 더욱 좁게 해석하여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음란’은 보통 사람들에게 분명한 개념으로 인식될 수 없고, 특히 어떤 성행위 묘사를 음란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는 더욱 애매하다는 점에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은 명확한가? 헌법재판소는 미성년자보호법 제2조의2 제1호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게”에 대하여 이 구절이 그것이 과연 확정적이든 미필적이든 고의를 품도록 하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인지, 인식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실제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일체의 것을 의미하는지, 더 나아가 단순히 그 행위에 착수하는 단계만으로도 충분한 것인지, 결과까지 의욕 하거나 실현하도록 하여야만 하는 것인지를 전혀 알 수 없어 그 규범내용이 확정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미성년자보호법 조항은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통하여도 그 규범내용이 확정될 수 없는 모호하고 막연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그 적용범위를 법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고 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역시 추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반사회, 비윤리적인 것”은 어떤가?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의 위헌성을 판단하면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이라는 불온통신의 개념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여기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는 위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가의 안전보장·질서유지”와 “미풍양속”은 헌법 제21조 제4항의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비교하여 볼 때 동어반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혀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공공의 안녕질서”, “미풍양속”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어떠한 표현행위가 과연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렵다”고 하여 법집행자의 합리적 판단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반사회, 비윤리적인 것” 역시 사람마다 가치관, 윤리관에 의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법집행자의 통상적인 해석을 통해서도 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반사회, 비윤리적인 것”이라는 기준도 명확한 기준은 될 수 없다.

    물론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심의는 청소년보호법에 기술된 기준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위임된 시행령의 구체적인 기준에 의하는 것이기에 문제없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규정된 심의기준 자체도 그 개념요소가 추상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참고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따른 기준을 준수하면 된다는 주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보호법이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심의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함에 있어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이란 입법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법에 따라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하고 시행령 등에 위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도록 중요한 내용은 법에서 규정하고 나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만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심의기준이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법집행자가 명확한 해석을 할 수 없는 정도로 추상적인 상태이기에, 청소년보호법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할 정도로 규정하고 난 뒤 시행령에 그 구체적인 내용의 규정을 위임했다고 보기 어렵다. 즉, 청소년보호법은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다. 청소년 유해성 개념의 상대성에 대한 고려가 없음

    위와 같이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의 추상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혹자는 심의기준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청소년유해매체 심의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자의적 심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청소년유해성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매체가 청소년에게 해로운지는 청소년마다 각자 다를 수 있다. 청소년의 연령부터 시작하여 개개의 청소년이 처한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 교육정도에 따라 해악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생리적 발달 정도와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다른 아동이나 청소년을 단순히 연령기준으로 묶어 음란물이나 폭력물 등 유해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을 일반화하여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무엇이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는 시대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시간적 상대성은 에로티시즘과 성 관련 분야에서도 특징적이다. 과거에는 음란한 것이 오늘날에는 전혀 음란한 것이 아닐 수 있다. 1970년 명화 ‘나체의 마야’가 그려진 성냥갑을 음란물로 인정한 대법원의 태도를 수긍하는 시민은 과거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독일 역시 1962년 판결에서는 혼전성교를 명백히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성을 긍정했지만, 오늘날은 그와 같은 이유로 청소년유해성을 파악하지는 않는다. 최근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 때문에 더욱 문제시된 ‘동성애’의 경우에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상 개별심의기준 중에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의 한 예로 적시되었다가 2004년 4월 30일 이후로 삭제되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유해성 개념이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같은 국가라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단일화를 추구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도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예컨대 독일은 음란물과 폭력물의 청소년유해성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지만, 예술의 자유를 보다 중요시하는 프랑스는 음란물과 폭력물에 대해 관대하지만, 자살과 관련된 정보를 더욱 유해한 것으로 파악한다. 자유주의 사상이 더욱 철저한 네덜란드는 16세 이상 청소년은 성인과 동일하게 음란정보를 향유할 수 있다. 벨기에 역시 음란정보에 대한 접근은 자유롭지만, 비도덕적인 내용의 묘사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 영화 ‘배트맨 1’의 경우 우리나라와 독일에서는 ‘12세 이상 관람 가’였지만, 벨기에는 배트맨이 선한 사람으로 등장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불법행위를 한다는 내용이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16세 이상 관람 가’로 하였다. 전쟁을 소재로 하였지만, 가족애 등 큰 감동을 안겨준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우리나라와 독일에서는 ‘12세 이상 관람 가’이지만, 벨기에의 경우 전쟁은 절대 코미디소재가 될 수 없으며 심각한 역사적 왜곡이라는 점에서 ‘16세 이상 관람 가’로 하였다.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심의는 행정기관인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단일한 기준하에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청소년 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지기에 위와 같은 청소년유해성 개념의 개인적, 시간적, 공간적 상대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라. 청소년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음

    위에서 살핀 청소년유해성 개념의 개인적·시간적·공간적 상대성을 전제로 할 때,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에서의 청소년유해성 개념 설정은 특히 청소년의 인권의식 성장에 대한 진지한 고려를 요구한다. 청소년유해매체의 규제에서 청소년의 인권보호 문제는 그동안 규제 법규의 존재 및 규제영역 확장의 정당성 요소로 작용하였다. 즉 청소년유해매체의 규제가 궁극적으로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규제가 초래하는 직업의 자유 침해나 영업이익의 손실, 기타 성인들의 권리 침해가 청소년의 인권보호를 이유로 정당화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계속 이어져 온 청소년 인권운동과 그를 통해 확장되어 온 청소년 인권에 대한 자각은 청소년유해매체의 규제가 청소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권)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 새롭게 조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맹아는 1987년을 정점으로 타오른 민주항쟁과 이른바 ‘참교육 1세대’들의 참교육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두환 정권시절 학도호국단으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학교분위기 속에서 고등학생들은 질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생들은 1987년 민주화항쟁의 영향을 받아 학도호국단을 대체하고 직선제로 학생회장을 뽑는 등 학내 민주화를 이루는 것에 일차적으로 주목하였다. 1987년 3월 진주 대아고에서, 4월에는 서초고에서 직선제 학생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6월항쟁 이후에는 그 움직임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이 중 30일이 넘게 장기적인 투쟁을 벌였던 경기도 파주여종고, 2000여명이 수업거부에 들어간 이래 명동 가두시위와 시교위 농성 등으로 확대되었던 정화여상의 사례는 당시 고등학생 운동의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보기이다. 그런데 이런 1987년 6월 항쟁의 불꽃은 한 번 타오르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학생회 직선제 운동을 비롯한 1987년 직후의 운동은 오히려 1989년부터 시작된 ‘참교육 운동’의 예고편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80년대 중고등학생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했다. 전두환 정권은 본고사 폐지와 내신성적 반영, 대학입학정원의 확대, 전일수업제 대학 운영, 과외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이 중 내신성적 반영은 고등학생들을 더욱 더 성적 경쟁에 내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외금지 이후 과외가 음성화되자 정부는 학교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전면적으로 허용하였고, 그 결과 학생들은 강제적인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집에 다녀오겠다”는 그 당시의 인사는 그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열악한 교육환경이 청소년들에게 미친 영향은 1980년대의 자살학생수 증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년도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명수 115 74 113 117 100 126
    자살학생통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생사업국, 『자살학생과 청소년문제』, 1992

    이런 견딜 수 없는 현실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까지도 들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참교육”을 내세우며 창립식을 가졌다. “참교육”은 일그러진 교육현실에 대한 저항의 기치였다. 당연히 정부는 전교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에 대한 해임, 파면, 면직과 함께 사법처리를 강행했으며 그 결과 1989년 9월까지 1700명이 넘는 교사가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여 전교조 교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선생님을 지키자”라는 구호는 단순히 전교조 교사를 지지한다는 것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참교육의 기치에 대한 동의였고, 강제적 보충수업, 자율학습, 입시경쟁 등으로 얼룩진 교육에 대한 반대였다. 학생들은 리본달기, ‘밤샘공부’(하교거부), 수업시간에 전체 뒤돌아 앉기에서부터 단식농성, 점거농성, 시위 등 전교조 교사를 지키고 참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한 저항에 발 벗고 나섰다.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중고등학생운동이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1995년이었다. 그 시작은 최우주 씨의 헌법소원이고, 그 해 말 결성된 중고등학생복지회(이하 “학복회”)부터 본격화되었다. 90년대 초중반 다른 부문들의 운동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것과는 달리 고등학생운동은 오히려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우주 학생은 PC통신을 통해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사람들의 놀람을 샀다. 최우주 학생의 PC통신 상 헌법소원은 많은 호응을 얻어 PC통신 하이텔에 중고등학생복지회가 만들어 졌고, 이어 PC통신 나우누리에도 학복회가 생겨났다. 이렇게 PC통신 공간에서는 그 당시 학생들의 인권현황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졌다. 학복회는 인권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학생 인권운동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이후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정부정책에서도 인권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인권대통령을 시작으로 정부와 사회에서도 각종 인권의 슬로건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1991년 유엔에 가입하고도 내내 잠자고 있던 아동권리협약까지도 빛을 보기 시작하며 국민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교육부에서도 1998년유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며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 학생인권선언을 공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물론 이 학생인권선언은 추상적인 말로만 가득 차있다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발표되지 못하였다. 반면, 학복회에서 준비한 <중고등학생인권선언>만 1998년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해 발표되었다. 이 학생인권선언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흐름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입시체제를 근간으로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억압하려는 기제들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탈학교, 일탈, 수업거부는 뜬금없는 신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억압에 대한 분노의 분출이었다. 학복회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던 학생활동가들은 2000년대 초 “전국중고등학생연합(준)”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전국중고등학생연합(준)”을 중심으로 두발제한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이 벌인 서명운동은 16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러한 두발제한에 대한 반대운동에는 여러 흐름이 있었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으로서의 두발자유화도 있었고, 학생들 스스로 규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화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두발자유화 운동은 기성세대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더 이상 청소년들이 통제되어야 하고 관리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것을 다수의 행동을 통해 알린 것이었다.

    이러한 운동의 경험들은 이후 2003년 네이스 투쟁, 2005년 두발 자유화운동,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네트워크 등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끊임없이 청소년인권의 신장을 가져왔다. 최근 경기도 교육청과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학생들의 두발제한 금지 및 체벌 금지 등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것은, 단순히 어른들의 배려로만 보기 어렵고 위와 같은 청소년 인권운동의 흐름 속에서 학생 스스로의 인권수호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인권의식 및 사회참여욕구는 기성세대보다 크지만,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청소년들 역시 권리를 누리게 하는 것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과 제11조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2조 역시 아동(청소년)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규정하여 청소년이 그 성숙 정도에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

    마. 매체별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음

    매체물에 대한 심의기관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심의하고(법 제7조 제1항 본문), 각 심의기관에 심의를 받지 않고 유통되는 매체에 대해서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직접 심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동조 제3항) 청소년보호법과 그에 기반을 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개별적인 심의기관과 근거법령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많은 근거법령이 청소년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심의기준을 준용하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보호법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심의에 대해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각각의 매체 심의가 가질 수 있는 ‘매체별 특성에 대한 고려’라는 장점이 사라지고 획일적으로 심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귀로만 듣게 되는 음반과 눈으로 보고 읽게 되는 책은 그 특성이 전혀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해당 여부를 판단하게 되면 특정 매체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Ⅳ. 개선방안: 정책과제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을 삭제하고, 매체별로 자율적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보호를 이유로 청소년에 대한 유해요인을 우선적으로 차단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표현의 자유나 청소년의 자아실현을 위한 권리들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심의기준은 법관의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추상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행령에 이를 더욱 분명히 한 심의기준을 두고 있으나 이 역시도 불명확한 개념요소를 사용하고 있어 추상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개인적, 시간적, 공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기관인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추상적인 청소년 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청소년유해매체를 심의하도록 함에 따라 청소년이 그 개인적인 특성이나 시대적, 공간적 특성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이 여러 매체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의 기준이 되면서 매체별 특성을 제대로 고려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 및 심의기능을 삭제하여 매체별로 자율적으로규제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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